시인님들의 숲 속

歸 去 來 辭(도연명)-----(고려시대 金克己 詩)

오도카니 2010. 7. 14. 21:01

하얀 해가 지고

 

 

白日淪西阿  백일윤서아  하얀 해가 서쪽 언덕 뒤로 잠기니

素月出東嶺  소월출동령  동쪽 봉우리 위로 흰 달이 떠오네

遙遙萬理輝  요요만리휘  달빛이 아득하니 만리를 비추이니

蕩蕩空中景  탕탕공중경  밝은 빛 허공 중에 흩어져 내리네

風來入房戶  풍래입방호  방 문 틈 사이로 찬바람 스며들어

夜中枕席冷  야중침석랭  한밤중 잠자리 베개머리 싸늘하네

氣變悟時易  기변오시역  날씨 변한 것에 계절 바뀜을 알고

不眠知夕永  불면지석영  오지 않는 잠에 밤 깊음을 알겠네

欲言無予和  욕언무여화  말하고 싶어도 대답 할 사람 없어

揮杯勸孤影  휘배권고영  외로운 그림자에게나 잔을 권하네

日月擲人去  일월척인거  해와 달은 사람을 버려 두고 가고

有志不獲騁  유지불획빙  뜻은 있었으나 이루지 못하였으니

念此懷悲悽  염차회비처  가슴깊이 서글프고 처량한 생각에

終曉不能靜  종효불능정  밤새워 뒤척이며 잠들지 못하였네

 

 

도연명,,은 ,,365년에 태어나,,427에 돌아갔으니 ,,,,,,

62세 까지 살았나요,,중국 ,,송(宋)대의 시인으로 ,,,,평범하고 담백한 시를 ,,,썼다나요,,

집앞에 버드나무 5그루를 심어놓고 ,,,,,,,

스스로 5류 선생이라 불렀다하네요,,,,

 

한때 벼슬길에 올라 ,,,,,,관직 생활을 하다가 ,,

41살때,,,누이의 죽음을 구실삼아 ,,현령직을 사임하고

전원생활을 ,,,,,,,즐기면서 많은 글을 썼다 하는데요,,,,,,,이때 현령직을 물러나면서 ,,,

쓴 글이 ,,,퇴관 성명서라고 할수 있는 ,,

 

귀거래사,,,"라 한답니다,,

 

귀거래사,,의 내용을 ,,한구절만 가져와 보면 ,,

 

'논밭이 묵어 가는데,, 어찌 돌아가지 않으리,,로 그렇게 시작하는 ,,그런 글이네요,,

 

아뭏던 ,,그렇게 관직 생활을 정리하고 ,,,도연명은 ,,,낙향하여,,,,,,,,,전원에서 몸담고 ,,,,,,살아가네요,,

 

 

 

 

어느날 밤 ,,,도연명은 혼자 술을 한잔 하면서 ,,,,,,,시 한수를 짓네요,,

 

'해가 서쪾으로 잠기니 ,,,,,,,,반대로 달은 앞산에서 떠 오르고,,

달빛은 은은히 ,,천지 사방을 ,,비추이는데 ,,그 달빛도 저 허공에서는 흩어져 ,,,버리네 ,

 

어느새 계절은  바뀌어 ,,방문틈 사이로는 ,,찬 바람이 ,,,,,,,들어오네,,

계절상 ,가을이 찾아 들었나 봅니다,,

 

그렇게 찬 바람 밀치고 들어오니 ,,배겟머리 싸늘하여지고,,그렇게 계절 바뀐것을 날씨 바뀐것을 보고야 알게 되었네요,

 

밤깊어 질떄까지 ,,잠이 오지 않았나 봐요,,

잠이 오지않으니 ,,그 누구가 옆에라도 있다면 ,,얘기라도  서로 주고 받을것인데,,

아무도 없었나 봐요,,

 

 

 

 

그저 혼자 ,,솔작 솔작 ,,한잔 하고 있었나 봐요,,,,,,오직 ,,혼자 술을 마시니 권할사람도 없고 ,,,,,,,,,,,

자기의 그림자를 벗 삼아 권해도 보네요,,

 

어느듯 해와 달은 도연명 혼자만 두고,,저 만치 가 버리고,,

청운의 뜻,,,,,,,,,펼치려 했으나,,이루지 못하고 보니,,

 

서럽고 처량한 ,,,,,,,생각이 ,,한없이 ,,,,느껴 지네요,,

 

그렇게 이런 저런 ,,,,,,,,생각으로 ,,,,,,도연명은 ,,,,,,,,,,,외로운 ,,,,,,,,,,,,,밤을 지새우네요,,,

 

지극히 고독한 ,,,,,,,,,,,시인의 분위기가 ,,느껴 지네요,,,,,,,

 

  

 

 

 



.............................................................................................참고,,,,,,,,,,,,,,,,,,,,,

도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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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연명

도연명 (陶淵明, 365년 ~ 427년)은 중국 동진의 시인이다. 자는 원량(元亮), 본명을 잠(潛), 자를 연명(淵明)이라고도 한다. 오류(五柳) 선생이라고 불리며, 시호는 정절(靖節)이다. 심양 사람. 동진 초기의 군벌의 대인물 도간(陶侃)의 증손이라 하는데, 부조(父祖)의 이름은 분명치 않다. 하급 귀족의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고, 부친은 일찍 사망했다.

생애 [편집]

젊어서 면학에 전념하여 입신의 포부를 가졌으나 29세경에 비로소 주(州)의 관리로서 관직에 임했다. 그 후 13년간 지방 관계에 있었으나 입신의 뜻을 이루지 못하고, 팽택령(彭澤令)을 80일간 근무한 후 향리로 돌아갔다. “내 5두미(斗米)의 봉급 때문에 허리를 굽히고 향리의 소인에게 절을 해야 하느냐”라고 한 말은 현(縣)을 시찰하러 온 군의 관리(郡 아래 縣이 있다)에게 절을 할 수 있겠느냐 하고 현령의 자리를 내동댕이쳤을 때의 명문구이다. 그때 전원으로 돌아갈 심경을 말한 것이 〈귀거래사(歸去來辭)〉이다.

그 후에는 심양에서 은일(隱逸)의 선비로 처세하면서 명성을 얻었다. 그곳에서 논밭을 갈고 자연의 아름다움을 즐기면서 전원 시인으로 맑고 깨끗한 시를 많이 썼다. 문장도 뛰어나서 이상의 세계를 그린 <도화원경> 등이 잘 알려져 있다. 술을 좋아했으며, 국화를 사랑하는 온화한 성격이었다. 쉬운 말로 시를 쓴 것이 특징이며, 유교와 노장 사상을 흡수하여, 인생의 진실한 것을 추구한 시인이었다. 10년 후에는 조정으로부터 좌저작랑(佐著作郞=당시 隱士에게 주어진 관직)을 수여받았다.

문학 세계 [편집]

그의 시는 현재 4언시(四言詩) 9수, 5언시 120수 정도가 남아 있다. 내용은 전원에서의 은사의 생활을 읊은 것, 자적(自適)의 심경을 토로한 것, 지방관리와의 증답시(贈答詩), 영사(詠史), 의고(擬古) 등이 주가 된다. 한아(閑雅)한 취향 속에도 때로는 격한 감정이 나타나 있으며, 소동파는 “그의 시는 소박하나 그 실(實)은 아름답고(綺), 파리하지만(苟) 실은 풍부(裕) 하다”라고 평하고 있다. 연명 시의 특색은 은자로서의 시인을 주장한 점이다. 종영(鐘嶸, ?~518)은 〈시품(詩品)〉에서, “고금을 통해 은일 시인의 종(宗)이다”라고 그를 칭찬했다. 즉 그는 은자의 처세를 훌륭한 감각으로 노래한 최초의 시인이었다. 은사의 눈으로 본 자연, 은사의 태도로 접한 세상을 시로 읊어서 성공시켰다. 그러나 이 시풍이 당시로서는 특이한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시단의 주류에는 없고, 〈시품〉에도 중품(中品)에 있는 데 불과하다. 같은 시기의 사령운(謝靈運), 안연지(顔延之=남조 송의 시인, 384~456) 등의 수려한 시풍이 육조시의 본류로 대접받은 것에 비한다면 현저한 차이가 있다. 그 영향도 〈문선(文選)〉을 편찬한 양(梁)의 소명태자 등의 존숭을 받고는 있으나, 호사의 영역을 넘지 못하여 6조기에는 볼 수 없다. 당(唐)대에 들어서, 왕유, 맹호연, 위응물(韋應物, 737- ?), 유종원 등의 자연파 시인의 추앙을 받게 됨으로써 크게 위치를 높였고, 송나라 소동파의 상찬에 이르러서는, 6조 제일뿐 아니라 고금 독보의 시인이란 명성을 확립시켰다. 은일·전원시인으로서의 평가 이외에 두 임금을 섬기지 않는 절의의 선비, 권력자에 저항하는 경골(硬骨)한 인간으로서의 평가도 예로부터 뿌리깊은 것이었다. 또한 리얼리즘의 입장에서의 평가도 오늘날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평가에 대해서는 아직 재고찰이 필요할 것이다. 연명의 작품은 시 이외에 부(〈閑情賦〉등), 산문(〈自祭文〉〈아들 儼 등에게 주는 疏〉등), 잡전(雜傳)(〈五柳先生傳〉〈五孝傳〉〈四八目〉등)이 있다.

〈귀거래사(歸去來辭)〉 [편집]

도연명이 41세 때의 가을, 팽택(彭澤=장시성 심양 부근)의 현령을 그만두고 향리(심양)로 돌아갔을 때의 작품이다. 13년간에 걸친 관리생활에 종지부를 찍고 드디어 향리로 돌아가서 이제부터 은자로서의 생활로 들어간다는 선언의 의미를 가진 작품이다. 지금까지의 관리생활은 마음이 형(形=육체)의 역(役=노예)으로 있었던 것을 반성하고, 전원에 마음을 돌리고, 자연과 일체가 되는 생활 속에서만이 진정한 인생의 기쁨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돌아가련다. 전원이 바로 거칠어지려는데 아니 돌아갈소냐. (歸去來兮 田園將蕪 胡不歸)”의 명구에서 시작되어, 전체적으로 영탄적 어조가 강하나, 그려진 자연은 선명하고 청아한 풍이 넘쳐 있다. 짧으면서도 구성·표현이 정연한 걸작이며 연명의 대표작으로서 후세에 커다란 영향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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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歸去來辭를 노래한 옛 시)

金 克 己

 

            思歸

數畝荒園久欲蕪   淵明早晩返藍輿

鬢衰却與飛蓬似   形瘦還將枯木如

無奈爲貧從薄官   不妨因病得閑居

但聞明主求儒雅   投佩歸山計恐疎

 

   돌아가기를 생각함

 

몇 이랑 묵정밭 오래 거칠어 가니 머잖아 도연명처럼 남여 타고 돌아가리.

귀밑털 성글어져 흩날리는 쑥 같고 몰골은 여위어 고목과 비슷해지네.

어쩔 수 없이 가난 때문에 얕은 벼슬 쫓아다녔지만 이제 병과 상관없이 한가하게 되었네.

다만 듣기론 임금께서 어진 선비 구하신다니 벼슬 버리고 고향 가지 못할까 두렵구나.

 

감상 : 김극기는 생몰연대가 분명하지 않지만, 고려 중기 의종, 명종 때의 문신으로 호가 노봉(老峰)이고 본관은 경주다. 젊어서부터 글로 이름이 높았고 문과에 급제했으나 관직에 뜻이 없어 초야에서 시를 지었다. 무신정권 때 학행으로 의주 방어판관에 천거되어 명종 때 한림학사가 되었다. 금나라에 사신으로 가서 문명(文名)을 떨쳤으나 얼마 후 죽었다. 문집이 135권으로 최우(崔瑀)가 편찬했다고 하나 전하지 않는다. 산림에서 불우하게 고고한 삶을 살다가 벼슬에 나갔으나 세력가에 빌붙지 않았다고 한다.

 이 시는 전원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을 읊은 것인데 언어구사가 맑고 활달하다. 수련(首聯)은 도연명의 귀거래사(歸去來辭)에 나오는 “전원이 장차 거칠어 가니 어찌 돌아가지 않으랴.(田園將蕪胡不歸)”라는 구절의 의취를 살리고 있다. 그리하여 도연명처럼 전원으로 돌아가고 싶은 심정을 부각시키고 있는 것이다. 함련(頷聯)에는 늙어서 벼슬길에 나온 자신의 모습을 형용해서 이미 초라한 몰골로 시들어 버렸다고 했다. 이미 늙어서 바쁜 공무에 적합지 않다는 뜻을 감추고 있다고 하겠다. 경련(頸聯)에는 자신의 처지를 말하여 가난 때문에 낮은 벼슬에 나오게 되었지만 이것을 버리고 고향에 돌아가 전처럼 한가하게 살겠다고 했다. 무신정권 아래서 벼슬하는 것이 아무리 가난 때문이라고 하지만 자신이 살아온 행적과는 잘 맞지 않는다는 자각에서 하는 말이기도 하다. 미련(尾聯)에서 그는 염려하기를 임금이 어진 선비를 구한다니 혹시 자신도 붙잡으면 어찌하나 그래서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면 어쩌나 하였다. 자신에게 잘 맞지 않는 벼슬살이를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가려는 계획이 왕의 부름으로 어그러지지 않을까 걱정이다. 험난한 시대를 만나 전원으로 돌아가려는 심정이 도연명과 매우 유사하지만 아마 그는 바로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고 더 붙잡혀 있었지 않았나 생각된다. 임금의 부름을 염려한 것이나 금나라에 사신으로 갔다는 기록 등이 이를 뒷받침할 것이다.      

 

       田家四時(春)

 

歲月風轉燭   田家苦知促

索綯如隔晨   春事起耕耨

負耒歸東阜   林間路詰曲

野鳥記農候   飛鳴催播穀

饁婦繞田頭   芒鞋才受足

稚子尋筍蕨   提筐向暄谷

遲日杏花紅   暖風菖葉綠

甘雨亦如期   來夜勻霡霂

莫辭東作勤   勞力在吾力

 

      시골집의 사철 (봄)

 

세월은 바람에 펄럭이는 촛불 같아 농가에서 바쁜 것을 알겠구나.

새끼 꼬아 지붕 인지 어제 같은데 어느새 봄 되어 밭 갈기 시작하네.

따비를 메고 동쪽 들로 나가니 숲 사이 길은 꼬불꼬불 돌았네.

들새는 농사철을 알리는데, 날고 지저귀며 씨 뿌리기를 재촉하네.

들밥 나르는 아낙네 밭 머리를 도는데 짚신은 낡아 겨우 발에 걸렸구나.

어린애는 나물과 고사리 찾아 바구니 들고 양지쪽 골짜기로 향하는데

해는 길어 살구꽃은 붉었고 바람은 따뜻한데 창포 잎은 푸르렀네.

단비도 또한 철을 맞춰 오니 간밤에 흐뭇이 고루 적셨구나.

봄 농사일 괴롭다고 꺼리지 말라. 노력하기는 오직 내 힘에 있네. 

      

 田家四時(秋)

 

鴻雁已肅肅   蟪蛄仍啾啾

田夫知時節   銍艾始報秋

四隣動寒杵   通夕聲未休

晨興炊玉粒   溢甑氣浮浮

紫栗落紅樹   朱鱗鈎碧流

白甁酌杜酒   邀客更相酬

外貌雖陋促   中情尙綢繆

酒闌起相送   顔色還百憂

官租急星火   聚室須豫謀

苟可趁公費   私廬安肯留

何時得卓魯   却作差科頭

 

       시골집의 사철 (가을)

 

어느새 기러기는 펄펄 날고 쓰르라미도 따라 울어대고

농부는 시절을 알아 쑥대 베어 비로소 가을을 알리네.

사방 이웃에 차가운 절구소리 저녁 내 그 소리 쉴 줄 모르네.

새벽에 일어나 입쌀로 밥 지으니 솥에는 구수한 김이 오르네.

자줏빛 밤은 붉은 잎에 떨어지고 붉은 비늘 고기를 푸른 물에서 낚는구나.

흰 병에 두견주를 따라 손님을 맞이해 서로 주고 받으니

겉모습은 비록 누추하나 마음 속의 정은 오히려 은근하다네.

술 먹고 일어나 서로 보낼 때 얼굴 빛은 도리어 온갖 시름에 잠기네.

관청의 세금 독촉이 성화 같아 집안 식구 모아 미리 의논하는데

진실로 세금은 바쳐야 되는 것이니 어찌 개인 집에 남겨두겠는가.

어느 때 탁무(卓茂) 노공(魯恭) 같은 이를 만나 한번 맨 먼저 바쳐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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